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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의 변천사

재무킹 2020. 11. 16. 20:11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잔은 수천 년 동안 모양이 바뀌어 왔다.수천 년 동안 잔의 흐름의 법칙을 알고 싶다면 그 시대의 문화적 배경을 결합하다.


'잔이란 글자는 '줌'에서 유래된 것으로 두 손을 모아 추켜 세운다는 뜻이다.가장 오래된 컵은 타원형으로, 양쪽에 귀가 있어 귀잔 이라고도 한다. 양손으로 귀를 잡고 술을 마셨다.상주 때 술을 마셨던 청동 모서리 중 일부는 손잡이가 달린 것이었고, 한대의  옻칠한 귀는 귀가 있어 손잡이의 기능에 해당하였다.

귀로 만든 컵에 술을 담아 물에 띄울 수도 있고, 도자기는 안 되고, 청동은 안 되고, 나무로 만든 칠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배(杯) '자는 '목( 木)'에서 따온 것이다.

한당 때 칠기는 도자기로 대체되었고, 도자기컵은 귀의 타원형이 아니라 둥글게 만들어졌다.도자기는 바퀴달린 수레에 끌어서 모양을 만들어 둥글게 만들기에 편리하기 때문이다.차는 한나라에서 시작하여 당나라에 널리 퍼졌고, 천하에 차를 마실 때에는 도자기 잔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때부터 차와 도자기는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최초의 도자기는 청자였는데, 당대에는 백자가 융성하여 남청북백의 구도가 형성되었으나, 백자가 상층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조정에 들어간 것은 원대의 일이었다.

↑이것은 세상에 남아 있는 당나라 시대의 형요 찻사발인데, 그때의 찻사발은 직경 10센티미터 정도였는데, 오늘날의 찻잔보다 훨씬 컸다.

당나라의 또 다른 찻잔은 탁잔으로, 손을 데지 않게 하기 위해 찻잔 밑에 쟁반을 두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뚜껑으로 이어졌다.

이상하게도 중국 도자기 잔은 하나도 없다. 당나라 때에도 술잔이 있었는데, 밑발을 높게 만들어 손잡이의 기능을 하였는데, 이를 '고족배'라고도 하였다.

당 사람들은 차를 달인 다법으로 차병을 가루로 빻고, 파와 생강 소금을 넣어 끓는 물에 끓였는데, 마치 지금 사람들이 국을 마시는 것 같았다.송나라에서는 차를 좀 마시고, 차를 가루로 빻아서 고로 만들고, 찻잔에 넣고, 끓는 물로 물을 부어 부어 다시 다선으로 흰 거품을 내었다.

차 정련공구(碾茶工具)

차 거품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시 나라를 휩쓸고 차와 싸우는 게임이 있었는데 여러 사람이 모여 차를 주문했고 컵에 거품이 더 많고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물론 백차 거품은 홍차 컵과 가장 뚜렷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에 홍차 컵은 송나라에서 인기가있었습니다.

원래 청자백자(靑子白子)는 백자쟁쟁쟁(白子爭)의 구도에서 흑자에 앞설 수 없었는데, 휘종( 徽宗)이 '대관차론(大觀茶論)'을 펴내면서 "잔색은 청흑(靑黑)이 귀하고 옥호조달(玉 。條達)은 상(上)"이라고 했다.

어떤 친구는 송대에 이르기를 반드시 여요라고 불렀는데, 마치 모든 송나라 사람들이 여요잔을 들고 시비하는 것 같았다.송나라 사람이 사용한 도자기는 오광십색이라 할 수 있는데, 여요는 상아탑 속의 물건일 뿐이며,당시의 주류 심미적 취향을 대표할 수 없다.

기물은 본래 고립시켜서 존재한 적이 없고, 습관에 따라 풍속대로 변화한다.명나라 때 차를 우려는 방법으로 탕색에 가장 적합한 것이 백자라 하여 명나라 초 정요인 백자잔(白子盏)이 가장 추앙을 받고 있다.

 

명나라 경덕진요 백유(白釉)의 수준은 정요를 넘어 응고지 처럼 축축하여 후대 사람들이 감백유라고 불렀다.위 그림의 순더잔은 닭의 심장의 아래쪽 부분과 같이 반원형이므로 지신잔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명대 이전에는 찻잔과 밥공기 크기가 비슷했지만 명나라 때는 갈라져 잔이 그릇보다 작아지기 시작했다.

잔이 작아진 것은 술의 영향을 받았는데, 예전에는 술의 도수가 낮아 지금의 맥주와 비슷했기 때문에 무송은 열여덟 그릇을 마셨는데도 범을 잡을 수 있었고, 만약 두 냄비로 바꾸면 가게에 나갈 수가 없었다.

명대에 증류주를 보급했는데, 알코올 도수가 높아졌는데, 다시 과거 구경 10센티미터의 잔을 사용하면, 한 사람이 다 마실 수 없을 것 같아서, 잔을 작게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런 작은 사이즈의 잔이 찻잔에 또 영향을 미쳤다.

말굽컵 청대(马蹄杯 清代)